칼럼 및 논설

행거[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

교육정책연구소 2024. 3. 12. 09:13

김   미

방안의 벽면에 서 있는 행거에 가족들의 옷이 걸려 있다. 외출복, 평상복, 잠옷까지도 걸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옷을 방바닥에 내려놓으면 가족 중 누군가는 얼른 행거에 걸었다. 가족들의 옷이 빼곡하게 걸려있지만, 단 한번도 행거에 걸린 옷이 너무 많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당연히 걸어 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행거가 위에서 아래로 축 늘어졌다. 아니, 왜 이래 이것도 부서지나 싶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재질이 목재로 되어 있던 행거의 상부와 하부가 만나는 부분이 빠져 버린 것이다. 나는 어떻게 빠질 수 있어 하는 심정으로 이리저리 살폈다. 처음에는 뭐 옷만 걸어 놓았을 뿐이건만, 원망하는 마음까지 생겼다. 몇 번 이리저리 만졌지만, 방법이 없었다. 행거를 만들어 팔았던 사람들을 원망해야 하나 싶어 다시 꼼꼼하게 살폈다. 자세히 보니 행거를 만들어 판매한 사람들의 잘 못은 아니었다. 구입해 사용했던 기간과 옷의 무게를 생각해 보니 우리 가족들이 무차별적으로 옷을 걸었던 무게 때문이었다. 기울어진 행거의 노고가 인정되어 측은지심까지 들었다. 얼마나 힘에 겨웠을까. 단 한 번도 헤아리지 못한 우리 가족들의 무심함이 되레 미안했다. 한쪽이 기울어 걸었던 옷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겼다. 원목 장인의 작품이라며 가치를 인정했기에 버리기는 너무 아쉬워 끈으로 상부와 하부 사이를 이었다. 부상당해 상처를 싸 메고 있는 환자 모양새다. 그래도 행거를 들어내기에는 아쉬웠다. 그 자리에 두고 가벼운 옷들만 걸게 했다.

힘에 버거워 무너진 행거를 보며 9남매의 제일 큰동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큰동서는 여섯 며느리의 첫 번째이고, 나는 막내며느리이다. 큰동서와 나는 처음과 끝이었다. 한 줄로 서면 서로의 모습을 보기 힘들지만, 둥글게 원을 만든다면 연결 고리가 되는 셈이다. 원이 되면 제일 가까운 사이다. 큰동서의 자녀가 나와 나이 차이가 서너 살 차이니 부모처럼 느껴졌다. 큰동서는 우리 집안 내무부의 선봉인 셈이다. 그러나 큰동서는 맞벌이고 사는 거리도 멀어 자주 볼 수는 없었다.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나 내려왔으니 특별하게 친밀하게 지낼 기회도 없었다. 시댁 가까이에는 형님들과 시누이까지 네 사람이나 있었다. 가까운 형제끼리 어울리게 되었다. 큰동서라는 자리만 있을 뿐 마음 적으로도 멀리 있었다. 여건상 기제사도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내 몫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집안 대사에 무엇을 척척 잘 하지는 못했다. 손윗동서들이 모두 해주니 그저 잔심부름이나 할 뿐이었다. 내가 결혼해 왔을 때만 해도 부엌에는 덩치 큰 손위 동서들이 다섯이니 가득 찼다. 손위 동서들은 한결같이 키나 체격도 좋았다. 어떻게 체격 좋은 며느리 위주로 선발이라도 한 듯했다. 다만 머리숱 수는 적었다. 나 역시 머리숱 수만큼은 가난했다. 어떻게 머리카락 부자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결혼해 오니 손위 동서들 머리카락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내가 가장 젊었으니 내 머리카락이 부자인 셈이었다. 큰동서는 여섯 며느리 중 체격도 왜소하고 머리숱도 빈약했다. 게다가 집안 행사에 전체적인 일은 거리가 가까운 며느리들이 다 했다. 먼 거리에서 큰동서가 도착했을 때는 따로 할 일이 없었다. 큰동서는 부엌 사정을 잘 모르니 동서들이 시키는 일이나 했다. 시어머니도 큰일은 여기 있는 며느리들과 의논했다. 그러니 큰동서는 기껏 도착해 눈치나 살피는 입장이었다. 큰동서의 입장은 상황이 그리되었으니 별 수 있겠나 싶어 무심하게 지냈다.

그러던 큰동서와 나는 이번에 한 줄이 아닌 원으로 손을 맞잡는 날이 있었다. 엊그제 치룬 집안 대사는 주체가 막내인 우리 집 일이었다. 다른 동서들은 다 집이 가까우니 각자 집으로 가게 되었다. 큰동서는 몸이 편찮은데도 빠질 수 없다며 늦게 도착했다. 그날 나와 나란히 누웠다. 큰동서는 허리가 불편해 먹고 씻는 일도 힘들어했다. 먼 길 온 큰동서는 안 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건만, 어찌 이리 힘든 길을 나셨냐고 나는 물었다. 큰동서는 당신 몸보다 큰며느리 자리가 먼저였노라고 했다. 그런 큰동서의 마음을 그동안 너무 쉽게 여겼던 것 같았다. 밤새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아주버니와 남편은 아내를 만만한 콩떡으로 취급하는 부분도 비슷했다. 남편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큰동서의 고뇌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남편과 살며 뭐든 자신의 방식만 고집할 때, 어느 누가, 이 답답한 속을 알아나 줄까 하는 마음이 차오르면 숨이 막혔다. 그 밤 큰동서와 이불 속에서 동변상련의 마음을 나누었다. 남편과 부부로 살며 속터졌던 일을 맞장구치다 보니 백 년 묵은 체증이 말끔히 내리는 것 같았다. 그동안 힘들었던 일을 이해받는 것 같아 거미가 실 빼듯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다. 말로 옷감을 짜듯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몇 벌의 비단 옷감을 짠 기분이다. 창밖은 동틀 기미가 느껴졌다. 눈빛은 야위고 입속은 말라갔지만, 가슴 밑바닥은 깨끗하게 씻긴 듯 평온했다. 이후 바라본 큰동서의 굽은 어깨가 더 안쓰럽기만 했다. 큰동서는 새댁 시절 서슬 퍼런 시어머니에게 살림을 배우며 가슴 한쪽에 고인 응어리가 피고름으로 자리 잡았다. 나 역시 연로한 시어머니에게 살림을 배우며 당신 방식을 무작정 강요 할 때 숨통이 막혔다. 서로 간 젊은 날의 아픔을 다독이며 한편이 되어 위안을 주고받다 보니 맞잡은 원이었다.

큰동서는 시어머니가 먼길 떠날 때 보다 더 연로해졌고, 몸의 어느 기능도 온전하지 못해 바로 서기도 힘들어했다. 그 와중에도 큰동서는 식구들의 안부를 일일이 물었다. 형제들은 큰며느리가 되어 더 든든한 버팀목이 되지 못 함을 아쉬워했다. 장손으로 자리매김해 준 든든함에 대해 고마움을 전한 적이 없었다. 무너진 행거를 보며 새삼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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