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괘종시계[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

교육정책연구소 2024. 2. 20. 09:22

김   미

거실에 걸려 있던 괘종시계가 사라진 자리가 휘영했다. 삼십 년 넘게 한자리에 있던 괘종시계였다. 괘종시계가 있었던 자리의 벽지 색깔은 이중적으로 드러나 있다. 마치 속살과 겉살처럼 선명했다. 벽면 괘종시계가 있던 자리는 도장을 찍은 듯 뚜렷했다. 앞면에는 시간을 나타내는 큰 숫자가 누가 보든 시원하게 식별이 가능했다. 하부에는 시계추가 있다. 긴 추와 짧은 추가 함께 있다. 시계추는 시간만큼 ‘땡,땡’ 소리를 울렸다. 고요할수록 시계추의 울림은 크게 들렸다. 한밤중에 눈감고도 시간을 가늠해 보려면 시계추 소리를 의식적으로 헤아리면 알 수 있다. 그러나 깊은 잠 속에 빠질수록 들리지 않은 소리였다. 깊은 잠을 못 이룰수록 뚜렷했다.

그처럼 시계추의 역할은 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니 분명히 있었다. 어릴 때 듣던 말 중 시계추처럼 의미 없이 왔다 갔다 한다며 비수였다. 시계추의 역할을 무시했던 말이 아니었는가 싶다. 괘종시계가 삼십사 년 동안 우리 가족들에게 시간을 알려 주는 역할을 했으니 대단한 임무였다. 저 괘종시계에 맞춰 살아왔더니 어느새 이 지점에 닿아 있다. 시계의 입장에서 보면 쉼 없이 일을 하면서도 억울한 소리를 듣는 셈이다. 무슨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가느냐,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흘러버렸다.

마치 원칙도 없이 달려 나가는 불한당 취급이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시계가 무작정 달려 세월을 속이는 것처럼. 괘종시계는 정확하게 삼십사 년 동안 우리 가족과 함께했다. 하루도 쉼 없이 일을 해도 몇 년에 한 번씩 갈아주는 건전지가 전부였다. 시계는 한결같은 속도로 괘도를 향해 달렸다. 가족도 좋은 일에는 시계를 무심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지만 집안에 우환이 있을 때나, 위급한 일이 있을 때는 쉼 없이 불편한 눈길로 시계를 노려봤다. 괘종시계는 몸체가 큰 까닭에 식구들이 지내는 안락한 방 안에서도 못 지냈다. 거실 벽에 걸렸다. 수명이 다해 시간이 멈춰 버리자,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만 했다. 괘종시계를 들어낸 자리가 허전했다. 식구 중 한 사람이 떠난 자리처럼 휘영했다. 큰아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곳에 있었다. 그 이후에 태어났던 큰아이는 새로운 가정을 이뤄 집을 떠났다. 내 아이가 태어나 자라는 모습을 괘종시계는 째깍째깍하며 지켜봤을 것이다.

괘종시계는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때는 바람을 일며 달리고 싶었을 것이다. 아이가 신나게 놀 때는 어깨춤을 절로 추며 신바람을 넣어주고 싶었겠지. 한집안에 시어머니는 병들어 지친 몸으로 의기소침하고 볼품없이 오그라들었다. 시어머니의 고통을 호소하는 신음을 들을 때 괘종시계는 한 발이라도 뒤로 움직이고 싶었으리라, 그 심적 갈등도 헤아려졌다. 멈춰버린 괘종시계는 지금은 마당 귀퉁이에 웅크린 채 있다. 그 모양새가 이별에 대한 아쉬움이 많은 듯해, 괘종시계가 측은하게 보였다.

괘종시계는 새댁 때 내가 가계부를 써 농촌지도소 생활개선부에서 부상으로 받았다. 그 무렵 나는 순응하며 살기보다는 어떻게든 농촌 환경을 배워보고 싶어 안달 내며 살았던 새댁이었다. 그 괘종시계를 받아들고 어찌할 수 없어 남편에게 전화까지 했다. 그걸 차 안에 실고 대단한 일을 해낸 것처럼 대문에 들어섰다.

그때 시어머니는 갓 새댁이 나다닌다며 불편해했다. 시어머니가 볼 수 있는 자리에 괘종시계를 걸었다. 시어머니는 단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나는 혹시라도 시어머니가 물어오면 당당하게 말할까, 아니면 겸손하게 그냥 받아 왔다고 가볍게 말할지 고민했던 기억도 있다. 시어머니는 가계부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길게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시어머니는 새 며느리의 설명에 귀 기울이려는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여섯 며느리 중 제일 막내라는 생각만 하신 듯 뭐든 어설프게 바라봤다.

마을 안에서 술을 좋아했던 당숙만이 나에게 술 한 잔 얻어먹을 요량으로 내 칭찬을 숨은그림찾기 하듯 열심히 찾았다. 술 생각이 난 당숙만이 내게 괘종시계의 정체를 물었다. 시어머니를 의식해 이래저래 부상으로 받았다고 자랑했다.

당숙은 술 생각만 나면 괘종시계 앞에서 저렇게 큰상을 받은 ‘질부’라며 나를 칭찬했다. 시어머니는 그 소리에 마음이 상했는지, 다시는 술대접을 못하게 했다. 그런 사연을 지닌 시계였다. 그 시계는 한동안 내 안에 자부심을 주었다. 그 시계바늘을 가리키며 내 아이들에게 시간을 가르쳤다. 그 시계를 보며 자랐던 아이가 자라 새 가정을 이루고 있다. 그 시계가 멈춤 없이 부지런히 달리는 동안 우리 집안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어설프기만 했던 막내며느리에게 큰살림을 맡겨야 하는 일로 조바심 타던 시어머니는 홀연히 저 세상으로 떠났다.

어느덧 나 역시 시어머니가 되었다.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시어미가 될까 조심을 떨지만, 며느리의 입장에서 보면 한곳으로 몰입된 시어머니일 것이다. 시계바늘이 빈틈없이 달려가는 순간 나의 시어머니가 내 곁을 떠나가듯 나 역시 어머니가 가던 길을 따라 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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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종시계

김 미 거실에 걸려 있던 괘종시계가 사라진 자리가 휘영했다. 삼십 년 넘게 한자리에 있던 괘종시계였다. 괘종시계가 있었던 자리의 벽지 색깔은 이중적으로 드러나 있다. 마치 속살과 겉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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