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고양이의 보은(報恩)[미래교육신문 박철한수필]

교육정책연구소 2024. 2. 20. 09:15

박 철 한

사람 이외의 동물을 짐승이라 한다. 짐승이라는 말의 어원은 한자어인 중생(衆生)으로서 본래는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그런데 15세기부터 사람이외의 동물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다른 동물들과 다르다고 애써 자존하는 데서 비롯되었으리라. 또한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사람만이 감정을 가진 것으로 여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짐승들은 그저 본능적으로 행동할 뿐 감정이 없다는 주장은 사람들의 차별의식에서 비롯된 억지인지도 모른다.

침팬지는 껍질이 단단한 열매를 돌로 쳐서 깨먹기도 하고 푸나무 가지를 꺾어 침을 바른 다음 개미굴에 넣었다가 재빨리 꺼내어 거기에 기어오른 개미를 핥아먹기도 한다. 이를 두고 “유인원이므로 그럴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크고 단단하여 한입에 삼킬 수 없는 동물의 뼈를 공중에서 바위로 떨어뜨려 잘게 부숴 먹는 독수리를 두고 그저 본능적인 행동일 뿐이라고 할 수만은 없으리라.

요마적에 ‘동물농장’이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소개된 동물들의 행동이 신기하다. 그 날 방송된 여러 동물들 중에서 자신을 돌봐준 사람에게 보은하는 길고양이의 감동적인 사연을 소개하면 이렇다.

『어느 건설공사 현장에서 인부들이 휴식이나 점심시간에 잠시 자리를 비우며 벗어놓은 작업용 장갑이 자주 없어진다는 것이다. 취재팀이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확인한 결과 고양이 한마리가 그 장갑들을 물고 날쌔게 자리를 뜨는데 뒤를 밟으니 근처의 어느 집으로 들어간다. 집주인이 말하기를 당초 그 고양이는 길고양이였는데 집에 데려와 먹이를 주고 보살펴 줬더니 어느 날부터 쥐를 잡아 마당에 쌓아 두더란다. 고양이를 호되게 나무랐더니 이번에는 쥐 대신 웬 장갑을 물고 왔다. 쥐를 물어오지 않아 다행으로 생각하고 칭찬해주었는데 그때부터 어디선가 장갑들을 수시로 물고 와서 마당에 수북이 쌓아 둔다는 것이다.』

그와 관련하여 견해를 밝히는 동물전문가는, 고양이의 입장에서 맛있는 먹잇감인 쥐를 먹지 않고 주인에게 물어다 주는 것은 일종의 보은(報恩) 차원이란다. 하지만 주인이 꾸지람을 하자 다른 것을 찾다가 장갑을 물어오게 되었으며 주인이 칭찬을 하니 그때부터 계속 장갑을 물어온다는 것이다. 곧 고양이는 주인이 그 장갑을 꼭 필요로 하는 줄 알고 주인에게 도움을 주려는 뜻에서 저지르는 행동일 수 있단다. 만약 그렇다면 사람과 무엇이 다르랴.

조선시대 황희정승이 젊은 시절에 길을 가는데 늙숙한 농부가 겨리로 밭을 갈고 있었다. 황희가 잠시 쉬면서 농부에게, 소 두 마리 중에서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하느냐고 물었다. 농부는 밭갈이를 멈추고 바싹 다가오더니 귓속말로 “오른쪽 얼룩소가 조금 더 실합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그까짓 말을 귓속말로 할 게 뭐 있느냐고 묻는 황희에게 농부는 “아무리 짐승이지만 비교를 하면 알아듣고 싫어합니다.”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그 말에 때달음을 얻은 황희는 이후 벼슬길에 올라 정승이 되어서도 신분에 관계없이 행동거지와 말을 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1854년, 미국정부는 태평양연안의 인디언 ‘시애틀’추장에게 그들이 사는 땅을 팔고 다른 곳에 가서 살 것을 강요하였다. 강요를 못이긴 추장이 조약 문서에 서명하기 전에 백인들 앞에서 한 연설문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우리의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보겠다. 한 가지 조건은 이 땅의 짐승들을 형제처럼 대하라. 나는 달리는 기차에서 백인들이 쏜 총에 맞아 죽어 초원에서 썩어가는 수많은 들소들을 보았다. 왜 들소보다 연기를 뿜어대는 철마가 더 중요한지를 모르겠다. 하지만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이다.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은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만물은 서로 맺어져 있기 때문이다.』지금 들어도 감동을 주는 연설이 아닐 수 없다. 당시 피어스 대통령은 추장의 연설에 감복한 나머지 그 지역을 인디언추장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으니 그곳이 바로 오늘날의 시애틀이란다.

매스컴에서 가끔씩 동물학대 관경을 본다. 강아지 때 채워진 목줄이 조여 고통 받는 버려진 개, 억지로 술을 먹여 정신이 몽롱해진 개를 보며 히히덕거리는 사람들, 몸을 돌리기조차 어려운 좁은 사육장에서 숨을 헐떡이는 돼지 등 그 모습도 다양하다. 짐승들도 인간처럼 생각하고 감정이 있다는 점을 안다면 도저히 그럴 수는 없으리라. 주인에게 도움을 주려는 행동을 하고 큰 뼈를 바위로 떨어뜨려 잘게 부숴 먹을 줄도 아는 짐승들인데 어찌 감정이 없다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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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보은(報恩)

박 철 한 사람 이외의 동물을 짐승이라 한다. 짐승이라는 말의 어원은 한자어인 중생(衆生)으로서 본래는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그런데 1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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