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수탉의 결투[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

교육정책연구소 2023. 10. 18. 09:17

김   미

수년간 닭 기르는 일에 몰두하다 보니 그들만의 생리가 보였다. 종족을 보존하려는 강한 집념이었다. 암탉은 알을 부지런히 낳았다. 그 알을 품으면 21일 동안 물이나 모이도 먹지 않았다. 꼼짝없이 알을 품었다. 아무리 짐승이라도, 물이라도 마시게 곁에 물그릇을 가져다 놓지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나는 혼잣말하듯 입안에서 중얼거렸다. “자식도 좋지만, 일단은 자기 건강이 먼저야” 암탉의 검은 콩알 같은 눈망울은 한곳을 응시하며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부화가 시작되면 빨리 태어난 병아리를 보살피지만, 시일이 지나고 부화하지 않은 알은 포기했다. 그러나 일단 부화한 병아리는 끔찍하게 보살폈다.

어미 닭은 병아리가 품 안에 있을 때는 깃털 하나도 무심하게 보지 않았다. 병아리가 우는 소리만 들려도 득달같이 달려가 보살폈다. 어느 시기가 되면 어미 닭은 그토록 애지중지 기르던 병아리도 가차 없이 부리로 찍어댔다. 참으로 비정했다. 어미 닭이라고 어제처럼 뒤따르다가는 어디든 부리로 찍어 버렸다. 심지어는 도망가도 거기까지 따라가서 찍어 버렸다.

수탉이 암탉을 거느릴 만큼 성장하면 그 수탉끼리 치열한 다툼이 시작되었다. 두 마리의 수탉이 작은 공간에서 견디지 못하고 탈출해 바깥 생활을 시작했다. 그것도 암탉까지 한 마리 달고 마당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바깥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굳이 가두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빈집이고 보니 대낮에도 잠깐 만에 살찐 닭들을 낚아채 가는 날짐승들이 있었다. 순간 흔적도 없이 채 가버리는 것을 보면 몹시도 화가 치밀었다. 그런 일을 수없이 겪고 보니 굳이 싫다는 닭을 우리 속으로 넣었다. 며칠째 바깥 생활을 해 오던 수탉은 우리 속으로 넣기만 하면 어떻게든 바깥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사생결단하고 바깥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수탉의 집념에는 막을 길이 없었다. 그래, ‘그렇게 싫은 너를 내가 무슨 수로 가둘 수 있겠냐. 차라리 날짐승에게 목숨을 날린다 다고 할지라도 어쩔 수 없겠다고 포기했다. 그 소리에 남편은 무슨 소리냐며 저렇게 키운 닭을 어떻게 날름거리는 날짐승에게 줄 수 있겠냐며 기필코 잡아 우리 속으로 넣었다. 수탉은 공중전, 벽치기 등으로 투항했다. 두 마리 수탉의 결투는 치열했다. 차라리 체격이 작은 수탉이 좀 수그려지면, 싸움이 잦아들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지만, 전혀 그럴 기미가 없었다.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그럼 너는 밖에서 살다가 들어갔으니 좀 피해야지 싶었지만,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오히려 닭 볏의 피를 입에 떨어뜨려 곧게 세우고 상대를 향해 질주했다. 그러면 상대 역시 고개를 쳐들고 무소뿔처럼 부리로 찍어댔다. 암탉들은 무서워 결투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떨어지려고 몸을 피해 달아났다.

수탉의 결투는 한 치의 수그러지는 법도 없었다. 두 마리가 목숨을 내놓은 것 같았다. 바람처럼 상대를 향해 몸을 날렸다. 두 마리 수탉은 온몸에 털이란 털은 세웠다. 마치 불공대천의 원수끼리 벌이는 결투 같았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나도 두 눈이 빙빙 도는 것 같았다. 나중에는 두 마리의 수탉이 정신이 멍한 상태로 섰다. 두 마리가 똑같이 휘청거렸다. 부리에는 붉은 피가 뚝 뚝 떨어졌다. 나도 정신이 몽롱했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치열할 수 있을까.

저들이 원했던 것은 수컷의 힘 과시였을까. 자리다툼일까. 밥그릇 싸움일까. 공을 세워 자기의 이름을 널리 드러내려는 공명심이었을까.

닭 우리 속에 공포가 엄습했다. 수탉의 치열한 다툼에 암탉들은 이 구석 저 구석으로 더 깊숙이 몸을 숨기기 위해 아수라장이었다. 암탉들의 관점에서 저 무모한 싸움에 괜한 피해자가 되기에는 억울한 일이 될 수 있겠다. 암탉 입장은 순결한 피해자였다. 사랑 때문도 아니고, 무작정 달려든 수탉의 욕정 때문에 암탉 등은 살빛이 다 드러났다. 일부러 사람이 힘을 다해 뽑아낸 듯했다. 수탉이 올라타 힘껏 짓밟아 발톱이 닿는 곳은 털이 다 빠져나갔다. 외모를 중시하는 암컷은, 수치심에 분노가 치솟는 일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고른 털빛에 그곳만 빠져 흉해 보였다. 사람으로 치며 심한 탈모증 환자 같았다. 얼마나 지겨운지 암탉들은 무작정 달려든 수탉의 동태가 감지되면 모이를 물었다가도 쏜살같이 좁은 난간으로 몸을 피했다. 도저히 수탉이 발을 붙일 수 없는 나무젓가락 같은 좁은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기억력이 좋지 못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림조로 ‘닭대가리’라고 하지만 닭 지능은 상당한 수준이라고 했다. 어떤 논문에 따르면, 닭의 지능이 일곱 살 아이의 수준이라고 한다. 물론 닭 수명도 길다고 한다. 우리가 얼핏 생각하는 것보다 닭은 수명이 길어서 평균 10년에 이른다고 한다. 그건 그렇고 내가 기른 닭 중에서 8년 동안 함께했던 녀석도 있었다.

아무튼, 수탉들의 결투가 눈앞에서 자꾸만 아른거린다. 상대에게 패배하여 힘없이 쫓기는 어떤 녀석이 생각난다. 세상에는 승자와 패자가 항상 있기 마련이라지만, 승자의 환호 아래에 아무쪼록 폭력에 의해 짓밟히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한 가정과 이 사회뿐만 아니라 지구촌의 평화를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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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탉의 결투

김 미 수년간 닭 기르는 일에 몰두하다 보니 그들만의 생리가 보였다. 종족을 보존하려는 강한 집념이었다. 암탉은 알을 부지런히 낳았다. 그 알을 품으면 21일 동안 물이나 모이도 먹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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