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집 이야기[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

교육정책연구소 2023. 9. 19. 09:34

김   미

외주 업체가 이번 주에 80년을 한자리에 버티고 있던 집을 철거한다는 연락이 왔다. 막내인 우리 부부가 그 집에서 시어머니와 10년쯤 살았고 내 신혼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내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생업 때문에, 그곳은 빈집으로 남겨두고 집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시어머니는 손수 대목수 몇 사람을 들여 지은 집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시어머니는 가난한 집에서 자란 탓에 좋은 집에서 살아 보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그런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늘 부러웠다. 생전에 그런 집을 짓게 된 여건에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했다. 새집을 짓게 만들어 준 시아버지에 대한 신뢰감도 깊었다. 그런 집에서 가족들이 살 수 있게 만들어 준 것만으로도 가장 역할은 충분하다고 여겼다.

시부모와 함께 살았던 며느리들의 증언은 달랐다. 시어머니는 아무리 몸이 아파도 남편을 위해 술 빚는 일만은 쉬는 법이 없었다. 시어머니가 빚은 술을 좋아했던 시아버지는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술독을 들락거렸다. 오전에는 맑은 정신으로 얌전한 모습이지만, 해 질 무렵이 되면 다른 모습의 사람이 되었다. 그들먹한 술독이 비어가면 시아버지 걸음걸이는 휘청거렸고, 입으로 술을 깼다고 며느리들은 귀엣말로 속닥거렸다. 시어머니는 그 소리에 양미간을 찡그리며 화냈다. 너희 시아버지만큼만 하라고 일축해 버렸다. 아무리 많은 술을 마실지라도 대문 앞으로 빚 독촉하러 온 사람 없었다. 우리 마을에서 빚 없이 새집 지은 사람이 몇이나 되는 줄 아느냐며 시아버지의 흠을 말도 못 하게 했다. 시아버지가 과하게 마신 술로 인해 쫓겨 다녔던 며느리들의 고충은 말도 못 꺼내게 했다.

며느리들은 시어머니를 힐끔거리며 ’저리 금슬이 좋으니 구 남매나 되는 자녀들을 보았다‘ 며 웃었다.

시어머니는 마음이 평온한 날이면, 집 이야기를 즐겼다. 젊은 시절 집을 짓기 위해 어린 자녀들과 헛간에서 생활했다. 시어머니는 올망졸망한 자녀들과 아기까지 가진 상황에서 집 짓는 목수들 매 끼니를 해 먹였다. 농사일도 빠짐없이 했으니 힘든 나날이었다. 그래도 새집에서 자녀들이 활발하게 뛰어놀며, 편안하게 살 일을 생각하니 고된 줄 모르고 살았노라고 했다. 넓고 만족스러운 집을 짓기 위해 전답까지 팔았다. 손발이 닳도록 일해 모은 재산이었다.

그렇게 지은 집에 대한 애정도 깊었다. 명절이면 집안 곳곳에 제상을 올렸다. 장독대, 광, 창고, 농기계, 무쇠솥, 대문, 부뚜막, 우사, 마루, 감나무, 쌀독 등이었다. 해가 뜨면 발 빠르게 제상을 거뒀다. 뒤늦게 보면 미쳐 깜빡한 곳도 있다. 제상을 차릴 때 헤아려 보면 무려 열세 곳이나 되었다.

시어머니는 어린 손자들이 말을 배울 무렵이면 집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시어머니는 방에 대한 기억도 일일이 전했다. 골방에서는 몇째 며느리가 손자 누구까지 낳아 살다가 집을 사 나갔다. 안쪽 뒷방은 몇째 아들이 공부밖에 몰라 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져 있었던 방이었다. 그 아들의 큰 꿈이 사라져 아린 손가락이 되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마구간이 딸린 방에서는 몇째 아들이 잠을 자며, 소를 잘 키워 살림 밑천을 마련해 갔노라고 했다.

내가 결혼해 오던 해 그 마구간 암소가 송아지를 가졌다. 그 소 기르는 일이 어느새 내 몫의 일이 되어 버렸다. 홑몸이 아닌 암소를 더 좋은 먹이와 잠자리를 제공하고자 애썼다. 한겨울에는 너무 차지 않는 물을 마시게 하고자, 군불을 지퍼 따뜻한 물을 주었다. 암소와 한 공간에 있다는 것만도 가족 같은 느낌이었다. 애지중지 기른 암소가 쌍둥이 송아지를 분만해 두 배의 기쁨도 누렸다. 그 두 마리의 송아지가 온 마당을 뛰어다니며 무럭무럭 자랐다. 똑같은 크기에 순한 눈의 송아지가 꼭 아기처럼 사랑스러웠다. 나는 어디든 뛰어다니는 송아지가 다치지 않을까 조바심쳤다. 잠깐 집을 비운 사이 남의 산밭으로 다니며 말썽을 피워 난처한 일을 만들기도 했다. 여러 여건상 송아지가 팔려 간 날이었다. 어미 소는 어린 송아지가 그리워 목멘 울음으로 날밤을 새웠다. 어미 소와 나는 힁한 눈으로 아침을 맞기도 했다.

우리 가족의 발자취가 어린 그 집이 사라진다니, 애달픈 마음이 절절했다. 온 가족의 추억이 사라지는 것처럼 가슴 시렸다.

집은, 그토록 많은 가족을 품어 또 다른 하루를 꿈꾸게 했다, 또한 가족들을 다독다독해 영육을 편히 쉬게 했으며. 세상을 살 수 있는 사랑과 믿음을 심어주었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지혜도 알게 했으며.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인내심도 알게 했다. 그리고 대를 이을 수 있는 안정된 장소도 제공하고, 사람에게 주어지는 죽음도 깨닫게 해 주었다.

집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쿵 소리를 내지르며 사라졌다. 우리 가족에 소중한 존재가 사라진 것처럼 허망하기만 했다. 가슴이 싸해져 왔다. 80년의 역사를 지닌 집은 순간에 사라졌다. 건물을 들어내자, 그 자리는 오래된 된장 빛 흙이었다. 그 이후 흙은, 무수한 푸른 잎들을 키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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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이야기

김 미 외주 업체가 이번 주에 80년을 한자리에 버티고 있던 집을 철거한다는 연락이 왔다. 막내인 우리 부부가 그 집에서 시어머니와 10년쯤 살았고 내 신혼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내 아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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