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사라진 이[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

교육정책연구소 2023. 7. 12. 09:25

김   미

제사를 하루 앞두고 내 불평불만은 극에 달했다. 오랜 세월 지내오던 제사가 왜 그렇게 번거롭게 생각되던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늘에 계신 시어머니는 조상 섬기기를 큰일로 여겼다. 행여 당신이 없을 때 철없는 며느리가 소홀하게 여길까 그것이 죽음보다도 큰 염려였다. 틈틈이 조상을 섬겨야만 하는 이유를 수없이 설명했다.

지금 내 마음을 안다면 주리를 틀 일이었다. 내가 결혼할 당시만 해도 같은 날 제사였던 집이 많았다. 제사 모신 뒷날 아침이면 서로 간에 제사 음식 나누는 일을 의논했다. 누구는 아침, 누구는 점심으로 정해 대접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제사 일로 몸과 마음이 힘들던 시절이었다. 그런 이웃들이 시대 흐름에 따라 간소하게 제사를 모시기로 했다는 소식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인제 남들은 홀가분하게 살아가는데 싶으니 심란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나로서는 형제들 앞에서 그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아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었다. 그 이유는 우리 식구가 물려받은 유산으로 유복하게 먹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제들이 심란하게 여기는 내 마음을 안다면 몹시도 괘씸하게 여길 터였다.

나는 제사만 다가오면 우거지상으로 변했다. 그런 속을 알 일이 없는 언니가 자기 시댁은 부모 제삿날에 가족들이 만나 배낭에 산행하러 가듯 술 한 병과 과일 하나를 들고 가 제사를 모시고 온다고 했다. 부모 제사도 모시고, 건강도 다지니 그것 또한 부모님 덕이란다. 언니는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제사라서, 산도 푸르고 바람도 살랑거려 제사가 기다려진다는 것이다.

한 뿌리인 사촌 형님은, 고급 호텔에서 제사도 모시고 가족 간에 화합도 다진다니 그 집 가족들은 오히려 제사가 다가오면 설렌다고 했다.

기뻐해 줄 일이었지만, 내 속은 부글부글 들끓었다. 우리 집만 뭔가 뒤떨어지고 여자들 고생하는 일은 나 몰라라 하는 것 같아 남편이 밉기까지 했다.

나는 가만히 있다가도 제사 한 달쯤 앞두면 할 일이 수두룩했다. 어떻게 하나 싶으면 불평불만이 입을 통해 터져 나왔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제사는 다가왔다. 내일이면 9남매나 되는 형제들이 파도처럼 밀려올 일을 생각하니 마음과 몸도 바빠졌다.

한 달 전부터 앞치마를 두르고 제사를 위한 일을 시작했다. 집안 구석구석을 일 년에 한 번씩 뒤집어서 쓸고 닦았다. 이불 빨래며 장독대도 쓸고 닦았다. 제수용품도 틈틈이 메모했다. 말릴 것과 치울 것, 다듬는 것을 구분했다. 내일은 제사 상차림만 하면 될 수 있게 단속했다. 과일 박스에서 과일을 꺼냈다. 시어머니는 크고 좋은 것으로 사야 한다고 당부했다. 어느 순간부터 눈치껏, 그 당부보다 형편대로 준비하는 야박한 며느리로 변해 갔다. 과일은 상에 올리기 위해 두 번 행주질했다.

제사용품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모여든 식구들이 먹을 수 있게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생고기를 사려고 가야 했다. 행여 못 살까 봐 염려해서 급하게 뛰어나가던 찰나였다. 뭔가 발이 걸려 그만 중심을 읽고 말았다. 불만을 쏟아 냈던 입과 시멘트 바닥이 부딪히면서 ‘턱’하는 소리가 났다.

생니가 튀고 입술이 터지는 소리였다. 개구리가 무심히 날아온 돌멩이에 맞아 네 다리를 뻗은 자세였다. 고개를 쳐들자, 내 입에서는 붉은 피가 흘렀다. 으깨진 입술에서 침과 섞인 늘큰한 피였다. 혀끝에는 돌멩이처럼 딱딱한 무엇이 걸렸다. 나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어지러웠다. 눈앞이 깜깜했다.

119 구급차가 소리를 내지르며 다가왔다. 더는 몸을 버틸 수 없었다. 시멘트 바닥에 찬 기운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두 사람의 119 대원은 의식을 확인해야 한다며 나를 흔들었다. 나는 이후에 일어나는 일이 무서웠다. 순전히 입으로 지은 죗값 같았다. 기왕 지내는 제사 평안한 마음으로 했더라면 이런 끔찍한 일은 면했을 텐데. 아니, 복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복은 거저 주는 것이 아니라, 복을 지어야 준다는 것을 모른 척했다. 왜 그랬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대학 병원 응급실은 나에게 고해성사하는 특별한 장소였다. 발가락 골절로 깁스했다. 그리고 앞니 네 개가 나갔다. 입술이 터져 겉과 속 두 곳을 3시간에 걸쳐 꿰맸다.

그렇게 나는 제삿날 병원 신세를 졌다.

내 입을 통해 지은 죄 때문에, 육체가 고통을 대신 받았다. 무엇보다 앞니를 모두 잃은 상실감은 깊은 상처로 남았다. 내 입으로 지은 죄를 인정하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여건에 그저 감사하리라. 불평을 늘어놓는 일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의 소행임을 몸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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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이

김 미 제사를 하루 앞두고 내 불평불만은 극에 달했다. 오랜 세월 지내오던 제사가 왜 그렇게 번거롭게 생각되던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늘에 계신 시어머니는 조상 섬기기를 큰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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