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삼국지연의’와 역사적 진실[미래교육신문 박철한수필]

교육정책연구소 2023. 7. 12. 09:17

박 철 한

한국에서는 물론 한중일 세 나라를 통틀어 역대 가장 많이 읽힌 소설이 ‘삼국지’라고 한다. 그런데 “삼국지 세 번 읽은 사람과는 송사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언뜻, 줄거리에 처세술의 교훈과 세상의 이치가 담겨있는 삼국지의 긍정적 해석에서 나온 말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은 등장인물들이 정의와는 거리가 멀고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권모술수를 일삼는 배경에서 그 말이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삼국지가 동양 남자들의 정신에 미친 해악이 작지 않다.”라고도 한다는데 고개를 끄떡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의 삼국지란 원말명초의 작가 나관중이 지은 소설 ‘삼국지연의’를 일컫는다.

삼국지연의와는 별개로 중국 서진의 관료였던 ‘진수’가 65권(위지 30권, 오지 20권, 촉지 15권)으로 편찬한 역사서가 삼국지다. 사기(사마천), 전한서(반고), 후한서(범엽)와 함께 중국의 4사로 일컬어지는 삼국지(진수)는 내용이 매우 근엄하고 간결하여 정사 중의 명저로 알려졌다. 진수는 사학자로서 삼국시대 ‘촉한’과 이후 들어선 ‘서진’에서도 여러 관직을 역임했는데 삼국의 역사를 찬술함에 있어 지극히 사실적이고 공정했다고 한다. 따라서 삼국지(역사서)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 기록한 역사서이기에 삼국지연의(소설)와는 다르며 그 내용을 사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한편 삼국지연의는 실제 배경(서기 3세기)보다 1,000여년 후(서기 14세기)에 ‘전상삼국지평화’와 역사서 삼국지의 촉지를 기초로 하여 쓰였다. 그런데 원나라 때 간행된 ‘전상삼국지평화’는 당나라에서 송나라를 거쳐 원나라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을 전해오면서 정착된 삼국의 역사이야기를 그림과 글로 구성하였으므로 그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는 다를 수 있다. 또한 삼국지연의가 리얼하게 쓰였다고는 하나 통속문학임을 감안할 때 사실이 아닌 내용을 삽입하거나 과장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오늘날 촉한(蜀漢)의 유비, 제갈량, 관우, 장비 등은 덕, 지혜, 용맹, 의리를 지닌 인물들로 여겨지지만 정작 최강국 위나라의 왕으로 지략이 뛰어났던 조조는 덕이 없고 간사한 인물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촉한의 입장에서 쓰인 소설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으리라.

중국 역사학자(이중텐)가 TV의 ‘삼국지강의’에서 밝힌 내용 중에는 새롭고 흥미로운 것이 많다. 삼국지연의는 군사전문가가 아니라 정치가였던 제갈량을 지나치게 영웅시 하였으며 ‘삼고초려(유비가 제갈량을 얻기 위해 세 번을 찾아갔다)‘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란다. 그리고 촉나라와 오나라의 공동작전에서 주유와 제갈량은 동등한 위치였는데 소설에는 주유가 제갈량의 지휘를 받은 것처럼 되어있고 역사서와는 달리 주유의 업적 상당부분이 제갈량의 업적으로 바뀌었단다. 또한 소설에는 주유가 자신보다 뛰어난 제갈량을 질투하며 하늘을 원망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것도 사실과 다르단다. 역사서에는 주유가 출중한 용모에다 지략 등 모든 면에서 제갈량을 능가하여 24살에 장군이 되었으며 당대의 미녀(소교)를 아내로 두어 남부러울 게 없는 사람으로 나와 있다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소설의 공성계는 ”사마의가 군사를 이끌고 촉나라의 성으로 쳐들어갔는데 성문이 활짝 열려있고 군사들도 눈에 띠지 않았으나 제갈량이 태연하게 노래를 부르며 성루에 서 있자 사마의가 겁을 먹고 후퇴하였다“라는 내용인데 그 또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진수의 삼국지에 나오는 공성계의 역사적 진실은 조조가 여포를 상대로 쓴 계략이었으며 그 내용은 ”조조의 군사들이 다른 곳에 출병하고 없을 때 여포가 성으로 쳐들어오자 조조가 성문을 활짝 열어 두고 성안의 아녀자들에게 노래를 부르게 했다. 여포가 보니 성문이 열려있고 안에서 노랫소리가 들리는지라 ’틀림없이 조조가 저 숲속에 군사를 매복시켜두고 유인책을 쓰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물러갔다.“라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도 소설 속의 공성계는 이해되지 않은 점이 많다고 한다. 첫째는, 성루에 서 있는 사람이 제갈량임을 알 수 있을 정도라면 그 거리가 가깝다는 것인데 물러설 것이 아니라 우선 활로 쏘아 죽였을 것이란다. 둘째는, 혹 제갈량의 작전에 의심이 가더라도 당시 사마의의 군사가 두 배 이상 많았으므로 성안으로 쳐들어가지 않고 에워싸고 기다리면 되었을 테니 겁을 먹고 물러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즉 실제로는 조조의 머리에서 나온 공성계가 소설에서는 제갈량의 계략으로 둔갑한 것이다.

역사 서술 체제의 하나인 기전체란 ‘본기(제왕의 연대기)’와 ‘열전(시대 상징인물들의 전기)’이 실리기 때문인데 진수의 삼국지는 위서에만 본기를 세우고 오서와 촉서는 왕들을 기타 인물들과 같이 여기며 열전 체제를 취하여 후세사가들의 비판대상이 되기도 했단다. 하지만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촉한을 중심으로 쓰인 삼국지연의와는 관계없이 삼국(위, 오, 촉) 중에서 위나라가 가장 강력했으며 중심국가라는 점이다. 실제로 삼국 중에서 촉한이 가장 먼저 위나라에 의해 패망(서기 263년)하였고 위나라에서 이어진 서진(서기 265년)이 오나라까지 멸하며(서기 280년) 삼국을 평정하였다. 역사소설의 내용이 사실에 가까워야 하는 까닭은 역사서보다도 소설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는 대중들의 역사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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