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의자에 앉아 있는 고통 (미래교육신문,미래뉴스)

교육정책연구소 2016. 9. 29. 10:50

 최성광(교육학 박사)

 

의자에 앉아 있는 고통

우리 반 정섭이(가명)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매일 6시에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동네 구석을 돌아다니며 새벽 운동을 한다. 이후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일찍 등교 해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야구를 한다. 학교수업 중 자투리 시간에는 친구들과 레슬링을 하고, 하교 후에는 운동장에서 해질녘까지 다시 야구를 한다. 주말이면 아빠와 골프 연습을 하고 겨울 방학이면 한 달 내내 스키장에서 숙식하며 스키와 보드를 탄다. 말 그대로 운동 인생을 산다.

그런데 정섭이는 교실수업을 매우 싫어한다. 딱딱한 의자에 40분 동안 앉아 있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체육수업과 달리 마음껏 움직이거나 소리 지를 수 없는 교실 수업은 정섭이게 기합 받는 것과 같다. 몸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정섭이에게 정적인 교실수업은 지루하고 힘들 수밖에 없다.

정섭이는 수업태도가 불량해 선생님께 지적당하기 일쑤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니 답답한 마음을 입으로 푼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끈임 없이 우스갯소리를 하거나 선생님과 말장난을 하며 친구들을 웃기려고 한다. 떠드는 정도가 심해 선생님께 지적을 당하고 나면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거나 아예 엎드려 자기도 한다.

현재 학교 현장에는 정섭이와 같은 이유로 상당수의 아이들이 교실수업을 힘들어 한다. 이들은 교실의자에 앉아 정적인 두뇌활동을 하는 것을 힘들어 하며 심지어 고통스러워한다. 그럼에도 교사와 학부모들은 학생들이 오랜 시간 의자에 앉아 차분히 공부하기를 원하고 이를 습관화시킨다. 이 과정에 순응하면 모범생이 되고, 적응하지 못하면 불량학생이 된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자연환경에서 자유의지를 통해 스스로 상황을 선택해 왔다. 원시시대부터 수렵과 채집의 과정은 활발한 신체활동을 통해 이루어졌고, 활동량이 많을수록 수확량도 비례해 늘었다. 이후로도 인간은 열린 공간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통해 생존해 왔다. 그런데 산업화 이후 전문적 지식과 고도의 사고 능력이 보다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해 내고, 제도화된 학교교육이 일반화되면서 인간은 학교와 교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지적 활동을 강요받게 되었다.

결국 몸과 마음이 근대화되지 않는 자연적 인간들은 정적 지능 활동을 강조하는 학교에서 점차 소외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의 정적 지능 활동은 주로 언어, 수리, 과학 영역에 집중되어 신체, 예술, 자연친화적 지능이 높은 학생들은 주변으로 밀려났다. 다양한 지식을 말과 기호로 나타내고 이를 확인하는 일반적인 현재의 학교교육과정은 세상을 몸과 음악과 미술로 표현하는 정섭이 같은 학생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인간이 각기 타고난 재능과 기질이 다르다는 것은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이 아니어도 우리는 삶을 통해 감각적으로 알고 있다. 근대적 학교문화와 제도는 효과성과 효율성에 입각해 조성되었고, 그 과정에서 부적응하는 학생들은 불성실하거나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받아왔다. 그러나 앞으로의 학교문화는 개별 학생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이에 따른 학생 맞춤형 개별 교육으로 전화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이미 포스트모던을 한참 지나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다양성이 존중되고 이를 통해 교육의 성과가 다양해지는 것이야 말로 개인과 사회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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