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윤 한(광주교육대학교 교수)
어산촌형 교육과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연구의 제한점으로 미리 제시함으로써 연구에 대한 논란의 소지를 사전에 차단해 버린다. 그렇다고 연구의 타당성이나 신뢰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에 대한 논란은 면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을 보면 이와 유사한 면이 있다. 국가에서 제시한 『교육과정』의 맨 앞에 교육과정의 의미를 미리 제한함으로써 교육과정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논란의 소지를 차단한 것이다. 예를 들어, 교육과정의 의미를 학교에서 편성, 운영하여야 할 학교 교육과정의 ‘공통적, 일반적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제시하였다. 더 나아가, 교육과정의 성격을 ① 국가 수준의 공통성과 지역, 학교, 개인 수준의 다양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교육과정; ② 학습자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신장하기 위한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 ③ 교육청과 학교, 교원, 학생, 학부모가 함께 실현해 가는 교육과정; ④ 학교 교육 체제를 교육과정 중심으로 개선하기 위한 교육과정; ⑤ 교육의 과정과 결과의 질적 수준을 유지, 관리하기 위한 교육과정 등으로 성격을 규정함으로써 국가에서 제시한 교육과정의 성패는 그것이 적용되는 현장에 있음을 미리 알린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학교 교육과정이 문제가 되었을 때 궁극적인 책임은 교사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고, 교육과정을 개발한 책임자들은 피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식을 교과서에 담아 교과로 가르치는 전통적인 교육을 해오고 있다. 국가가 제시한 교육과정에 맞추어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교과서에 담아 정해 주는 국정교과서 제도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사와 학생들로 하여금 교과서에 제시된 지식을 습득하되 수업 시간에 활동을 통해 경험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은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대상들의 특성의 차이(예: 도시 vs. 농어산촌) 등을 간과하기 쉽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가르치다보면 자동차 보기도 힘든 섬에서 육상교통안전을 가르치고, 섬 학생들에게 더 중요한 해상교통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국가에서 설계(과거에는 교육과정 개발의 과정의 의미가 강한 ‘개발’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최근에는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결과를 의미하는 ‘설계’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음)한 교육과정이 과연 누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공통적·일반적 기준’이라고 했지만, 우리나라 표준어 규정에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서울에 사는 중산층 자녀들을 대상으로 설계되고 개발되어지지는 않는지 합리적인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대상을 구체화하는 것은 교육과정 작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군다나 최근의 교육과정은 학업적인 목적과 더불어 직업적인 목적(예: 진로교육 등)도 강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학생들로 하여금 그들의 미래 삶을 위해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따라 교육과정 작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과정이 현대 서울에 사는 중산층 자녀에 초점을 맞추어 설계되고 개발되어졌다면, 이 교육과정에 의해 학습을 하는 학생들은 서울에 사는 중산층 자녀들의 미래에 초점을 맞추어 학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되면, 농어산촌에 사는 학생들의 흥미와 관심사가 반영되기 어렵고, 더 나아가 그들의 미래의 삶을 위한 준비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농어산촌 학생들이 자기 고장을 사랑하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데, 그러한 학습 기회가 제한되기 마련이다.
최근 예비교사들과 함께 농어산촌 소재 학교들의 교육과정과 도시 소재 학교들의 교육과정을 분석‧비교 해봤는데, 별 차이가 없었다. 오늘날 농어산촌 인구가 급감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농어산촌 학교 교육과정이 학생들의 농어산촌 지역의 삶을 긍정적으로 이끌어주는 교육과정이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고 도시생활만을 동경하게 하는 교육과정이었던 것도 한 몫을 했을 수도 있다. 농어산촌에 사는데 도시 학생들 기준으로 만들어진 교육과정으로 공부를 계속한다면 농어산촌 학생들은 농어산촌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시로 떠나기 마련이다.
이제 그동안 소외되었던 농어산촌 학생들을 위한 교육과정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그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고, 그들의 흥미와 관심사를 반영한 농어산촌형 교육과정 설계와 개발에 정부와 교사들은 더욱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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