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및 논설

그렇게 말해 미안[미래교육신문 김미수필]

교육정책연구소 2022. 12. 14. 09:41

김    미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먹이며 글을 쓰다 보니. 지난번에는 지역 신문에 둘째 아들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다.

둘째가 중학교를 마친 후, 객지 생활만 하다 삼십이 넘어 다시 귀향해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나는 뭐가 잘못된 엄마인지 모르겠지만, 아들도 불편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유난히 깔끔한 아들은 팔뚝에 색깔별로 세탁할 웃을 걸치고 이것저것은 고급천이니, 손으로 빨라 달라고 했다. 그 소리에 내 눈이 가자미 눈처럼 돌아가자, 둘째가 몇 번 다짐 받는 것에 몹시 심사가 뒤틀렸다. 밥도 끼니마다 차려주기를 요구하니 뭔가 얽매이는 것 같아 죽을 맛이었다.

줄곧 함께 살았던 남편은 그런 면에서는 까다롭게 요구하지 않아 자유로웠다. 특히 반찬에서만은 아직까지 투정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요리에 정성을 들인다던가, 끼니마다 생채를 만들어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왔다. 그래도 반찬이 “싱겁네, 짜네.” 하는 군말이 없었다. 그렇게 길들어온 내가 아들 시집살이라니 도저히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기껏 신경을 써 몸에 좋은 채식 위주로 밥상을 준비 놓으면 둘째는 밥상을 눈빛으로 씩 둘러보고 ”오늘도 초식동물이 즐겨 먹는 “밥상이네요.” 하며 내 얼굴을 살피는 자세가 신경에 거슬렸다.

가족들의 빨래 세탁도 모았다가 하니 그것도 불만이었다. 둘째는 오늘은 이 옷을 입을 건데 아직도 세탁기 안에 있는 거냐며 굳이 말을 곱씹었다. 마치 당연한 일에 게으름을 탓하는 거처럼 들렸다. 나는 주방에서 일할 때는 온전한 내 공간이라고 생각해 듣고 싶은 음악을 들으면서 신바람 나게 요리했다. 둘째와 함께 살게 되면서 자신이 음악을 들어야 하니 내 소리는 확 줄일 것을 요구했다. 아니, 이 집은 내 지분이 훨씬 더 있다. 거기다 나만의 공간이다. 내가 듣는 음악 소리가 크다니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듣는 음악에 지장을 주고 있다니, 이건 주객전도도 유분수지 말이 안 됐다. 억울하지만, 엄마이니 양보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아직도 둘째는 미성년자처럼 부모의 지극한 보호 속에 있던 생활 방식을 고집했다. 어미로서 미주알고주알 따질 수 없어 뒤틀린 그 순간의 기분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가차 없이 지면을 통해 발표했다.

그 후 다시 뒤돌아보니 둘째가 꼭 나를 불편하게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둘째는 대신에 내가 모르는 신조어를 알려주며 함께 젊은 감각을 짐작하게 해 주었다. 모르는 외래어나, 컴퓨터 사용법도 자세하게 알려주는 세심함도 있었다. 나의 고민도 인터넷매체까지 동원해 적절하게 상담해 주었다. 심지어는 화장이나 머리 스타일, 쇼핑까지 함께 다니며 무거운 짐은 다 맡아 처리했다. 부부싸움 뒤끝에는 꼭 내 편이 되어 불편해하는 내 마음도 풀어주었다. 나중에 보니 남편에게도 그런 식으로 해 주었다니, 아들이 진정한 내 편인지 알 수 없어 섭섭하기도 했다.

둘째는 내가 힘들어하는 것은 해결해 주어야만 직성이 풀렸다. 다만 자신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은 전혀 모른 척했다. 글을 발표할 순간은 둘째가 있어 고마웠던 일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것도 갑자기 청탁이라 그냥 머릿속에 있던 글을 써냈다. 그리고 나는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그 후 갑자기 문자가 왔다. 그것도 ‘뻔뻔한 놈’이라는 제목의 내 글이었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오늘 아침은 둘째에 대한 고마움이 가득 차 점심에는 물만 마셨어도 든든했다. 아침에 우리 부부는 계획했던 책장을 옮기던 중이었다. 둘째는 출근하기 위해 마당에 나왔다가 쌓여있는 책을 보고 겉옷을 벗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대신에 책장 옮기는 일을 도와주었다. 삼복더위인지라 시원할 때 한다고 우리 부부는 식전부터 일을 시작했다. 나는 괜찮으니 둘째에게 어서 출근을 재촉했다. 둘째는 짧은 순간에 다 옮기려고 욕심껏 하다 보니 땀이 비 오듯 했다. 두 분이 어느 세월에 하겠냐고 했다. 우리는 천천히 하고 씻을 수 있으니 괜찮다고 했다. 둘째는 끝까지 무거운 책들을 다 옮긴 후 송골송골 맺힌 땀을 수건으로 훔친 후 출근했다. 멀어져가는 둘째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 부부의 분신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뻔뻔한 놈’이라는 글을 발표한 오후에 나를 아끼는 선배한테 전화가 왔다. 발표된 글을 보았다며 ‘참 솔직한 글’이라 하며 가족들 흉허물은 어떻게든 숨기려는 마당에, 내 글을 보니 가슴이 후련해지더라고 했다. 당신은 가슴이 터져도 가족의 이야기라 숨기고 엄마라서 감싸야만 된다고 생각하는데 대신 터트려 주어 시원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졌다.

저녁에는 큰아이가 들이닥쳤다. 한 손에는 내 글이 실린 문제의 지역 신문을 들고서 말이다. 나는 가슴이 덜컹했다. 큰아이는 둘째에게 그 글을 내밀었다. 그 글의 주인공인 둘째 아들은 자신의 엄마가 맞기나 한 거냐고 물었다.

그 순간 나는 얼마 전 내가 읽고 공감했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폴리 골드버그의 글을 읽었던 부분을 되뇌었다. 나는 작가와 작품은 별개라고 했다. 혹시 작가가 쓰는 글이 견고하여 연구 불변한 구조물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작가가 쓰는 글은 순간이 만들어 낸 작품이야. 내가 만들어낸 글은 그때의 내 생각, 내 손, 나를 둘러싼 공간과 내가 느낀 그 순간의 감정이라고 인정해 주길 바란다고 둘째에게 말했다. 둘째는 여전히 큰 눈을 껌뻑였고, 고른 이를 드러내며 엄마 마음을 안다는 듯 웃었다. 그 후 우린 악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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